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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용사들 “형제의 나라”안형철 기자의 튀르키예 취재 뒷풀이
중부일보=안형철기자 | 발행일시 2022.11.13
이스탄불 전경

14시간 동안 비행 아이고 허리야!

비행 중 디스크 도질라 ‘노심초사’

현지통역 유창한 한국어 실력 감탄

비속어·은어까지 척척 코리안 착각

 

비행

언론진흥재단에서 ‘튀르키예 취재’가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도 잠시, 튀르키예까지 비행시간만 12시간이란 것을 알게 되고 걱정이 밀려왔다. 불과 일주일 전에 겨우 디스크 치료가 완료됐는데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바로 병원으로 쫓아가 물었다.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아플 것만 같아도 우선 약을 먹어라, 그리고 틈틈이 비행기 안에서 산책을 해라” 두 가지 대비를 알려줬다. 근 2~3개월 동안 디스크로 고생했던 터라 의사의 대비책은 불안함을 달래기는 부족했다. 어쨌든 출국! 난생 처음 가는 나라를 출장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비행시간 12시간은 평균이었나 보다. 갈 때는 거의 14시간, 올 때는 11시간 정도 걸렸다. 자리에 앉아 자다, 먹다, 자다, 먹다만 반복했다. 마치 둥지에 있는 아기새들에게 먹이를 주듯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승무원들은 계속해서 밥을 줬다. 먹다 자다뿐인 스케줄이라니 이런 호사는 오랜만인 것 같다. 날짜가 넘어가는 비행 끝에 튀르키예에 도착. 땅이 큰 나라여서인가 공항자체도 크다. 너무 크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보였다. 생각보다 출국장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현지통역과 약속시간은 1시간 정도 늦었다.

현지통역

현지통역은 정말 이국적인 외양을 가지고 한국말이 능숙했다. 비속어와 은어에도 능통해 그 점이 퍽 맘에 들었다. 왜 한국어를 배웠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 친구는 애초에 언어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에 우연히 꽂히게 됐다는 이유였다. 제일 능통한 외국어는 한국어지만 그 외에도 영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현지통역은 묻지 않았지만 “K-pop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질문을 받았나보다. 당시 궁금했던 왜 튀르키예로 국명이 바뀌었는가 묻자, 현지통역은 “나도 잘모르겠다”며 자기도 불편하단다. 원래 튀르키예 내부에서는 튀르키예라고 말했고 오히려 외국인들이 튀르키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단다. 한국에 대입하자면 외국인들이 보통 한국, 코리아라고 부르던 것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튀르키예라고 부르면 학술적으로도 헷갈리고 중앙아시아에는 튀르키예 국가가 많아서 이들과 혼동될 수 있다 고 한다. 현지통역은 그냥 터키가 나은 것 같다고 정리해줬다. 이후에 알게 됐지만 국명이 바뀐 것에는 turkey(칠면조)가 실제 서구에서 튀르키예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다. 우리에게 터키는 터키고 칠면조는 칠면조 아닌가. 터키를 말하면 칠 면조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스치듯 지나간 아야 소피야

모스크

한국에서 먼 거리에 얼핏 모스크를 본 적이 있지만, 현지에서 모스크를 보니 새삼 더욱 이국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모스크는 정말 한국의 교회 수준으로 정말 많았다. 현대식으로 지은 모스크에서 아주 조그만 모스크까지 다양했다. 숙소 근처에는 꽤 큰 모스크가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찍으며 관심을 가지자 현지통역은 “모스크에 들어가 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반바지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부터 일러줬다. 내가 당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현지 통역은 유명한 모스크(아야 소피아)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은 반쯤만 지켜졌다. 스치듯 지나가며 사진만 찍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형제의 나라”

 

인터뷰 응한 참전용사 세 명 모두

90세 넘은 나이에 ‘한국사랑’ 여전

이스탄불 택시기사들은 ‘터프가이’

 

참전용사

참전용사와 인터뷰. 사실 제일 기대된 부분이다. 일전에도 경기남부보훈지청에 참전용사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생존자도 적지만 거동과 의사표현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도 아니고 튀르키예 참전용사를 만나 인터뷰 한다니 정말 귀한 기회이지 않은가. 만나서 인터뷰한 참전용사는 이스탄불에서 2명, 앙카라에서 1명이다. 연로했고 각자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쉽지는 않은 인터뷰였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인터뷰한 세 명 모두 90이 넘은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 활기를 가지고 있었고, 눈에서도 생기가 넘쳤다. 진짜 노병이란 이런 것일까. 진짜 군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직접 싸워 지킨 나라여서인지 첫 마디가 ‘우리는 형제’다 라는 말이 마치 짠 듯이 나왔다. 한국전 참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고, 애정도 물씬 느껴졌다. 앞선 이스탄불에서는 감사의 표시를 미처 하지 못했는데 앙카라에서는 꼭 전하고 싶었다. 튀르키예 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배워 틈틈이 되뇌었다. 틈틈이 되뇌인 이유는 그 말이 어렵다. ‘테섹큘 에데름’ 쓰기도 어렵다. 감사의 표시가 이렇게 어렵다니.

앙카라 시내에 있는 택시 호출기. 파란 버튼을 누르면 어디선가 택시가 달려온다.

택시기사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택시기사들이였는데,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분위기가 퍽 다른데 이스탄불의 택시기사들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우선 이스탄불의 택시기사들은 좋은 말로 해서 거친 사나이들이다. 창문에 팔을 걸치고 담배를 태우는 것이 기본자세다. 정말 운전하면서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았다. 같이 동승했던 현지통역은 “원래 이러지 않는데...”라며 민망해하기도 했다. 운전은 화려하다. 한국의 칼치기는 애들 장난 수준이다. 골목에서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스탄불 택시기사 중에 단 한 명도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택시뿐 아니라 대부분의 차들이 그렇다. 초보운전자는 이곳에서 연수한다면 실력이 빠르게 향상될 것 같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이들은 한 번쯤 길을 잃는다. 그리고 택시 내부에는 무언가 하나씩 없다. 뒷자리 보조 손잡이가 없다던지,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던지 말이다. 보조 손잡이가 없을 때 택시기사가 화려한 코너링을 선보이면 손으로 천장을 짚으며 버티느라 애먹었다. 당시 여름이라 무척 더웠는데 에어컨을 아무도 틀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요청하자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 수 없다”는 해괴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곳도 택시기사들이 적은 것인지 조금만 막히는 구간을 지나칠 것 같으면 택시기사들이 승객을 태우지 않았다. 일부 중심지역의 경우 택시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건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한 번은 택시를 포기하고 배를 타고 정체구간을 벗어난 적도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인상적인 경험 뒤에 만난 앙카라의 택시기사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취재진은 앙카라 택시에서 작동 되는 에어컨에 놀라고 좋아했다. 그리고 앙카라에서 택시에 미터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부일보=안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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