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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자 30년, 그 삶의 이야기] 경기일보 강한수 본부장
인천경기기자협회 | 발행일시 2018.12.11

1988년. 경기일보의 시작과 함께 한 사람이 있다. 강한수 동부권취재본부장이 그 주인공. 경기일보가 내딛는 첫 걸음과 기자로서 같이 첫 발걸음을 뻗은 강 본부장에게 기자생활 30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 본부장은 경기일보 편집국 사회부, 오산, 안양, 성남주재기자 등을 거쳐 현재는 동부권취재본부 본부장(용인)으로 근무 중이다. 용인에는 지난 1994년도에 첫 발령을 받아 현재까지 약 24년간 용인주재 기자를 맡고 있다.

경기일보 강한수 본부장

Q. 기자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A. 그 당시만 해도 기자라는 직업이 생소했고 잘 몰랐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기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경기일보에 입사하게 됐다. 막상 들어와 보니 선배들에게 기사 쓰는 요령과 취재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기자라는 직업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일정, 매번 기삿거리를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기자라는 직업이 사명감과 열정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기자라는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  

 

Q. 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A.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경찰서를 출입하는 이른바 마와리를 돌았다. 1988년도 입사 이후 1989년도에 오산시청 출입기자로 발령을 받아 화성경찰서를 출입했다. 그 시점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때였다. 아침에 경찰서를 가서 변사사건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성별부터 물어봤다. 혹시나 여성이면 연쇄살인사건과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이었고 변사가 있다고 하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타사에 이른바 물을 먹어서 큰일 날까 봐 하는 마음도 한몫을 했다.

한 번은 사건현장에 직접 들어간 적도 있었다. 아침에 경찰서로 출근했는데 시내 여관에서 자해소동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현장에 가보니 피의자(남)는 마약 투약을 하고 특정인물을 불러달라며 여관 베란다에서 흉기로 자해를 하고 있었고 여관방에는 피의자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인명사고가 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위험하단 생각보다는 피의자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과 함께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피의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당시 사건현장을 기사로 썼던 게 기억이 난다. 나중에 유치장에 가보니 피의자가 헬멧을 쓰고 있었다. 알고 보니 계속 유치장 벽에 머리를 박아서 경찰이 헬멧을 씌운 건데, 그만큼 피의자의 환각상태가 심했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선배에게 꾸지람만 들었던 적도 있었다. 1990년도께 안양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홍수가 나서 안양의 한 다리가 붕괴됐다. 그걸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고 현상한 것을 내가 본사로 가져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번 국도에 물이 차서 차량통행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 사진을 갖고서 마감시간을 맞추려고 수인산업도로로 돌고 돌면서 신호도 위반하고 정말 진땀 나게 달렸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마감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때 당시 지역사회부 차장이 “기자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라고 했다. 그래서 “도로에 물이 차서 돌고 돌아오느라 늦었다”고 말하니 차장이 “기자가 차가 막히면 걸어서 오고 뛰어서 와야지”라며 혼만 났다. 정말 목숨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급하게 왔는데 칭찬은 커녕 꾸지람만 들었다.

 

Q. 기자생활을 하면서 현재와 이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A. 말 그대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때는 원고지로 기사를 써서 팩스 있는 곳만 죽어라 찾아다녔다. 기사를 보낼 수 있는 게 팩스가 아니면 직접 본사로 가져다주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젊은 기자들이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른바 팩스존이 있었던 셈이다. 요즘 보니 휴대폰으로도 인터넷을 터트려 노트북 사용이 가능하더라. 또 전화기가 없어서 매번 삐삐를 차고 다니면서 전화기가 있는 곳을 수소문하면서 찾아다녔다. 또 요즘에는 자료를 찾으려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빠르지만 그때는 관공서에 직접 발품을 팔아서 자료를 보곤 했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요즘 기자들은 편해(?)졌다고 생각이 많이 든다. 

 

Q. 지역기자만의 장점이 있다면.

A. 지역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출입처를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더 다양한 사람을 많나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리고 그 지역사회와 함께하면서 지역 정서를 알게 되고, 만나는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Q. 후배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요즘에 느끼는 게 우리때만 해도 한 번 직장이면 거기에 뼈를 묻고 오랫동안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요즘 젊은 후배 기자들은 그런 면이 찾아보기 힘들어서 아쉽다. 젊은 기자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모습이 많이 보일 때가 있다. 옛날이야기 같지만 언론사는 군대보다 기강이 세다고 할 정도로 규율이 엄격했다. 선후배 기강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만큼 단체생활도 중요시하고 조직을 중시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론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화니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후배기자들이 인내심이나 조직을 위한 언론생활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언론인은 사물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자는 기자의 눈으로 봐야 한다. 사물을 보던 이야기를 듣던 기자로서의 눈으로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 그게 일반인들과의 차이점이다. 그래야지만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생긴다.

 

Q. 마지막 한마디.

A.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런 세월이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회사, 가족, 사회, 이런 구성원들과 함께 생각하면서 지내온 세월이 3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사실 30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거창하게 내세울 것은 없다. 그저 경기일보를 위해서 노력해온 것밖에 없다. 경기일보에 입사해서 경기일보에서 지내왔고 끝까지 경기일보에 남아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 또 후배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마음도 함께 든다.

글ㆍ사진=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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