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광석을 보다展-만나다·듣다·그리다’ 전시를 다녀왔다.

올해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20년째 되는 해인데, 이를 기억하기 위해 열리는 전시다.

사실 나는 김광석 마니아가 아니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에 대한 특별하고 애틋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김광석의 노래 몇 곡이라도 알게 된 건 그의 자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뒤의 일었다.

그런 내가 김광석 전시를 찾아간 첫째 이유는 대학 시절 주요 데이트 코스 가운데 하나였던 대학로 주변을 오래간만에 다시 걸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인천 출신 작가인 이종구 중앙대 교수와 인사할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기념해 발매된 김광석 다시 부르기 한정 LP앨범의 재킷을 이종구 화백이 그렸고, 기념 사인회가 이날 열렸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전시를 둘러봤다.

나에게 이번 전시는 민중가수 김광석,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보다는 ‘딸바보 김광석’을 새롭게 발견한 시간이었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면 화사한 봄꽃이 가득한 어느 공원에서 딸 서연이를 목마 태운 아빠 김광석의 사진이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잠에서 덜 깬 김광석이 눈을 반쯤 감고 부스스한 머리로 자신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갓난아이 서연이와 뽀뽀하고 있는 사진도 무척 애틋해 보였다.

딸 서연이를 무릎에 앉히고 카메라를 보고 있는 김광석의 표정은 아기보다 더 순수해 보였다.
아내 말고 사랑하는 여자가 또 생겼다는 ‘팔불출’ 같은 농담도 그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사랑을 했는데요. 얼마 전에… 마누라 말고… 그냥 좋더라고요. 계속 보고 싶어요. 요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딸내미 하고요."

3집에서는 자장가를 두 곡이나 넣을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고 한다.

기자 못지않게 수첩을 끼고 살았던 ‘메모광 김광석’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공연 레퍼토리가 적혀 있는 곡목 리스트부터 시(詩)나 일기 같은 메모들 등이 참 많았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재밌는 이야기들도 제법 있었다.

‘서글픔 / 삶이 서글픔인 걸 / 네가 아니 내가 아니 / 그 누군 안다고 알고 있을 거라고 / 믿자 믿어야 살지’  (메모 발췌)

‘1995년 7월 4일 아침 11시30분 GA935편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11시간 만에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기내식을 두 번 먹고, 서연이는 너무너무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나는 무척 피곤해서 짜증이 나는데 서연이는 마냥 즐거워한다. 자카르타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면 현지 시간 19시30분 비행기로 덴파사(Danpasar)에 간다. Danpasar가 발리다.’  (메모 발췌)

딸바보이면서 메모광이었던 김광석이었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발달장애아인 딸을 남겨두고,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런 습관들 때문에 김광석의 죽음을 두고 타살의혹이 최근까지도 제기되고 있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딸바보와 메모광인 김광석의 모습 말고도 뮤지션 김광석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볼거리가 많은 전시였다.

꼭 김광석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둘러볼 만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는 6월 26일까지 이어지니 많은 이들이 찾아 다시 한 번 소박한 김광석의 삶을 느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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