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싫어서라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평범한 이유로 너와의 결혼을 결심했는데 어느덧 정말 부부가 되어 아내인 너에게 편지를 쓰는구나.

연애하면서도 자주 편지를 쓰지 않았는데 같은 집에 살면서 남편으로서 편지를 쓰려니 괜히 더 쑥스럽다.

더구나 글 쓰는 게 직업인 기자 아내에게 편지를 쓰려니 보통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네. 사건 처리하면서 업무 서류를 만드는것보다도 훨씬 힘들다.ㅠㅠ

이 숙제를 던져주고 넌 좋다고 혼자 드라마를 보고 있다니. 우선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스쳐 지나간다. 수습 시절 술과 피곤에 쩔어서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지구대에 오는데도 미모가 빛을 발했지. 첫눈에 반한 것 까진 아니지만 참 예쁘고 똑똑한 아가씨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총각 경찰들 사이에서 네 이름이 오르내리고, 너만 지구대에 오면 샤랄라라라라~ 한 BGM이 깔리는 듯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동화된 것 같아. 이 수많은 짐승들 사이에서 너를 쟁취해야겠다는 경쟁의식도 마구 샘솟았지.

그렇게 나는 우리 조직에서 너는 너의 조직에서 숨막히는 비밀 연애를 이어갔고, 두 직업군 모두 워낙 말이 빠른 동네이다보니 얼마 안 가 우리가 사귀는 걸 다들 아는데 우리 둘만 모르고 있더라.

결혼하고 나니 연애할 땐 몰랐던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그걸 알아가는 것도 참 좋다.

너 눈도 뜨고 입도 벌리고 침도 흘리면서 자는데.. 다들 모르겠지?

그래도 그 모습도 정말 예뻐. 대각선으로 누워서 침대를 혼자 다 차지하고 자는 모습 조차도. 각자 출근해서는 종종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묻는 것도 좋아.

오늘은 어떤 걸 취재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듣고 있으면 호기심이 가득 차면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간접경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쩔 땐 점심에도 술, 저녁에도 술을 먹는다며 불평인듯 불평아닌 불평같은 걸 하기도 하고, 기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항의라도 하면 더 화가 나서 씩씩대기도 하고...

아무래도 일하면서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을 많이접해서 그런지, 요즘 부쩍 고민이 많아 보여.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몇 년 뒤 아이를 낳으면 일과 병행하면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등등.. 곧바로 넌 그럴 수 있다 고 대답 못 해줬는데, 이 글을 빌어 얘기할게.

좋은 기자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데도 문제가 없도록 내가 많이 도와주겠다고. 멋진 기자와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내가 더 분발하겠다고 말이야.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선미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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