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디자인 만년필 펠리칸-루비레드 가장 애착
제일 비싼 볼펜 36만원… 총 20자루 소박한 펜심

"취미가 뭐에요?"

질문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취미가 없어서 대답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독서같은 평범한 취미부터 이유없이 외딴 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취미까지 모두 말했다가는 다소 괴짜 이미지가 각인이 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해마다, 아니면 처한 상황에 따라 취미를 하나씩 정해서 말하는 편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후 공식취미는 펜 모으기다. 기자와 펜, 펜 수집이 조금은 독특해 보일지라도 글 쓰는 직업 상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만 하다.

수백만원짜리 한정판 만년필을 마주칠때 심장이 바운스하는 펜 콜렉터에 비하면 나의 펜 수집은 소박한 편이다. 가지고 있는 펜의 수는 모두 20자루. 가장 비싼 볼펜이 36만원, 가장 저렴한 중국 만년필이 6천원 정도로 다양하고 생각보다 비싼 펜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올해 초, 가격이 몇 배나 뛰어버려 한창 이슈가 됐던 모나미153 한정판 모델을 정가보다 6배 더 주고 중고로 사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펜 콜렉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지고 있는 펜들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로 사용하는 펜은 볼펜 2자루, 만년필 2자루 뿐이다. 크게 전투(취재)용, 기사쓰기용으로 나눌수 있다.

보통 취재를 할 때는 만년필 보다는 볼펜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다소 격한 상황에 봉착하는 취재 특성상 만년필을 사용하다가 야리야리한 펜촉이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베개에 얼굴 뭍고 우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볼펜은 비스콘티-노르딕 피오르드 , 북유럽을 디자인했다는데 조금
화려한 편이다. 볼펜은 국제규격 리필심(4천~9천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 필기감 차이가 별로 없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펜은 만년필이다. 펜촉을 사용하는 만년필 특성상 손길을 타는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사용하면 할 수록 자신의 손 모양, 필압 등 습관에 따라 펜촉이 마모되면서 주인에게만 부드러운 펜이 된다. 때문에 만년필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설령 선배일지라도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 좋다. 가장 애착이 가는 만년필은 펠리칸-루비레드 로 루비를 디자인했다는데 많이 화려해서 뭇여성들에게 뺐길 위험도 여러번 있었다.

약간 사치스러운 펜 수집 덕에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4월 진도에 내려갈 때 험난한 상황이 예상되면서 다소 저렴(?)한 펜을 들고 갔었다. 하지만 진도에서 첫날밤, 강영훈 선배와 대화 도중에 펜을 하수구에 빠트렸었다.

그 때 펜 가격이 4만5천원이라는 말을 듣고 선배는 놀라며 무거운 하수구 뚜껑을 번쩍 들어 펜을 찾아줬었다. 작은일이었지만 그때가 유독 기억나는 것은 세월호라는 특수상황과 맞물린 해프닝이기 때문이리라. 만약 300원짜리 볼펜이었다면 그냥 버리자 하고 아무 기억 없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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