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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경기미’  일본엔 ‘고시히카리’박혜림기자의 일본 니가타 취재 뒷풀이
인천일보=박혜림기자 | 발행일시 2022.11.13
에이치고유자와역 사케 뮤지엄 폰슈칸에서 관광객들이 니가타현에서 생산된 쌀로 만든 다양한 사케를 살펴보고 있다. 김철빈기자

니가타현 우오누마 최고의 명품쌀 생산지 유명세

커피 원두 고르듯 다양한 지역 쌀 쇼핑 이색 광경

일본 전통주 ‘사케’의 주원료로 사용 다양한 소비

 

인류가 가장 먼저 가꾼 곡물, 쌀. 우리에게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의 삶은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던 한반도 최고의 쌀은 단연, ‘경기미’다. 예로부터 경기 땅에서 나는 쌀로 지은 밥은 맛 좋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엔 경기미가 빠지지 않고 올랐다. 그러나 4차 산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쌀’은 더는 주식이 아닌게 됐다. 서구화된 식단에 밀려 우리 쌀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값싼 수입산 쌀까지 들여오면서 영화를 누리던 ‘경기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속에서도 쌀값만큼은 예외다. 농민들은 추수를 뒤로한 채 거리로 나왔다. 한해 어렵게 지은 농사는바닥으로 내팽개쳐졌고 성난 민심도 쌀과 함께 나뒹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우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일본은 일찍이 쌀 소비 급감에 따른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린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이 더없이 궁금해졌다. 일본에도 이천이나 여주처럼 쌀을 명산품으로 앞세운 지역이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고시히카리’의 산지가 일본 니가타현 우오누마다. 국내에서 고시히카리 품종은 밥맛 좋기로 유명하다. 국내 육성 품종을 확대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고시히카리는 까다로운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인 입맛에도 고시히카리는 맛있는 쌀로 통한다. 그러한 이유로 우오누마 지역의 쌀은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우리 일행은 니가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단번에 이 지역이 쌀의 명소임을 알아차렸다. 공항이 있는 도쿄 하네다에서 니가타현 까지는 380km 남짓. 니가타현에 가까워질 무렵 잠시 휴식을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니가타 여러 지역에서 나는 쌀이 저마다의 독특한 포장 옷을 입고 진열돼 있던 것. 휴게소를 찾은 방문객들은 마치 커피 원두를 고르듯 쌀의 표기사항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는 한아름 쌀을 구매해 갔다.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도 지역의 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때마침 철도 개국 150주년을 맞아 다양한 일본의 철도 사진을 덧입힌 패키징 상품이 매대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니가타 에치고유자와역 인근에서 짐을 풀었다. 묵고 있는 호텔의 로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도 역시나 지역의 쌀이 놓여 있다. 니가타현을 찾은 방문객들은 언제 어디서든 쌀을 어렵지 않게 구입했다. 이처럼 니가타의 쌀은 기념품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쌀은 다방면에서 활용됐다. 쌀을 주원료로 하는 일본의 전통주, ‘사케’의 규모는 와인과 견줘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세계 최대규모 사케박물관, ‘폰슈칸’에서는 해마다 1000여 품목 이상의 사케를 생산한다. 대부분 양산이 아닌 가문마다 특유의 전통주 양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가양주의 형태를 띤다. 폰슈칸에 유통되고 있는 사케들은 쌀이 주재료로 사용되면서 지역의 쌀이 소비되고 있다. 쌀을 가지고 만드는 상품들은 사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된장, 감주, 간장, 조미료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쌀이 쓰여졌다. 실례로 니가타 우오누마에 위치한 우오누마 양조장(우오누마 코지 살롱)에서는 쌀로 만든 코메코지(누룩)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들 을 생산해낸다. 우오누마 양조장에서는 하루 평균 20t 이상의 쌀이 소모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쌀의 영역은 관광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쌀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들이 쌀 산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문화콘텐츠가 된 쌀은 관광에만 그치지 않고 유통과 농민들의 판로 개척에도 기여하고 있다. 사이타마현 교다시에 위치한 작은 마을은 해마다 1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간다. 이들은 논 위에 유색벼를 심어 거대한 미술작품을 완성하는 '논아트(단보아트)'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 다. 논아트는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했 다. 90년대 들어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고 마을의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마을은 위기를 맞게 됐다. 이때 일본 최대 광고회 사였던 '하쿠호도'가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아이디어로 논아트를 제안하면서 이 지역은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하게 됐다. 사이타마현 교다시의 논아트 역시 논을 관람할 목적으로 세운 전망대가 흉물로 방치되자 2008년부터 논아트를 조성하게 됐다. 방문객들은 지역의 쌀을 온·오프라인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어 교다시는 관광과 쌀 소비 2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니가타현 에이치고유자와역에 마련된 사케 자판기에서 관광객들이 시음을 하고 있다. 김철빈기자

쌀 활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 ‘관광자원화’ 눈길

사이타마현 교다시 작은마을 한해 방문객 10만명

명소화·유통·농민 판로 개척 ‘상생의 선순환’ 구축

 

시는 관광과 쌀 소비 2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일본 니가타 우오누마 지역의 쌀 산업 현황을 듣기 위해 우오누마 농림진흥부를 찾았을 땐 카사이야스 후미 보급과장으로부터 놀라운 얘길들었다. 우오누마 지역은 ‘쌀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일본 전체를 놓고 봤을 땐 국내 상황에서처럼 쌀이 남아도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우오누마 지역에선 유독 쌀이 부족하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요인을 묻자 그들은 단 한마디의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맛있기 때문이다”라는 이 한 마디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게 했다. 이토록 극찬하던 고시히카리 쌀로 지은 밥맛이 궁금하던 차, 저녁 메뉴로 일본 전통 가정식을 택했다. 한 술 크게 떠 입으로 직행한 순간 친숙한 맛이 혀에 감겼다. 찰지고 윤기 있는 밥맛이 과연 고시히카리 명산지의 품격인가 싶을 만큼 밥맛이 좋았다.동시에 우오누마 쌀이 맛있기 때문에 쌀이 없어 못 판다고 자부하던 보급 과장의 말이 괜한 허세는 아닌 듯했다. 실제 도쿄 신주쿠에서 먹었던 밥맛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기가막힌 밥맛이었다. 4박5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총체적 난국 속 우리 쌀 산업에도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경기미가 일본 우오누마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우수한 미질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먼 미래 우리 쌀의 경쟁력을 점쳐볼 수 있었다. 우리 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따끈한 밥 한 공기, 고작 나흘이었지만 먹지 못해 아쉬웠던 잘 익은 배추김치 한 포기 썰어 먹어야겠다.

 

인천일보=박혜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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