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5.2 목 16:42
상단여백
HOME 새소식 협회보
[지역언론,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말하다] "인천 곳곳서 울려퍼진 만세 함성…민주화의 길 트다"
인천경기기자협회 | 발행일시 2019.05.01
기호일보 박정환

어찌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와 가치를 인천의 테두리에 가둘 수 있겠느냐마는 역설적이게도 인천은 그것의 기개를 한껏 끌어올린 땅이라 하겠다.

1883년 제물포항을 연 인천은 세계열강의 각축장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천은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병폐의 실험장이었다.

비폭력과 평화로 영근 인류공동번영이라는 새 질서로의 이행, 3•1운동의 그 숭고한 뜻은 인천 곳곳에서 울렸다. 섬(덕적)에서 장터(황어)에서, 학교(창영)운동장에서 절박했던 인천의 민중은 칼과 총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은 무엇인가? 음양의 융합을 통한 문명세계의 궁극이 아니던가.

‘제국’에서 ‘공화제’로 민주화의 길을 튼 곳도 인천이었다. 1919년 4월 2일은 자유공원(만국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회의 개최가 시도됐다. 이 일을 계기로 4월 23일 한성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됐다. 4월 11일 세워진 상하이 임시정부는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를 통합했다. 이 합침의 디딤돌은 한성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는 헌법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민주권의 이념을 성문화한 첫 수권조직으로 인천과 깊은 인연이 있다.

 

기호일보 박정환

<저작권자 © 인천경기기자협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천경기기자협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협회소개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 973번길 6 경기일보사   |   대표전화 : 031) 250-3414  |   발행인 : 최원재   |   편집인 : 정진욱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원재  |  Copyright © 2019 인천경기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