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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자 30년, 그 삶의 이야기] 기호일보 조흥복 국장
인천경기기자협회 | 발행일시 2018.12.11

"국장님! 이번 인천경기기자협회보에 국장님과의 인터뷰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인터뷰이(interviewee)가 돼주세요!!"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 기자의 당돌하고 갑작스런 부탁에도 흔쾌히 자신의 지난 삶을 얘기해주겠다고 약속한 노선배는 11월의 어느 날 오후 화성시까지 자신을 찾아온 후배를 반갑게 맞아줬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웃을 때 간간히 보이는 눈가의 주름은 지나간 세월을 엿보였지만, 호탕한 웃음으로 어린 후배를 맞아주는 그의 얼굴에서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유의 여유가 풍겼다.

30년 전 기호일보의 창간 멤버이자 지난 40여 년간 지역사회의 파수꾼으로 달려온 베테랑 언론인, 조흥복 국장(화성담당)이 그 주인공이다.

후배와 마주 앉은 조흥복 국장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도 기자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책을 읽어주듯 풀어나갔다.

기호일보 조흥복 국장

창간부터 현재까지…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기호일보와 인연의 시작

그가 기호일보와 연(緣)을 맺은 것은 1975년 10월 10일 창간된 기호일보의 전신, ‘경기교육신보(京畿敎育新報)’의 창간 멤버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1973년 9월 1일, 당시 박정희 정권은 ‘1도(道) 1사(社) 언론 정책’을 통해 전국의 11개 지역신문을 폐간하고, 3개의 지역신문을 새로 창간하는 언론 재편성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인지역도 언론사들의 통·폐합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경인지역의 수 많은 언론인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는 조 국장은 "그러던 중 언론의 자유를 위해 경기교육신보가 주간지 형태로 창간했고, 그 일원이 되면서 다시 기자로서의 삶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경기교육신보는 유신 이후 전국에서 신문잡지로는 처음 창간된 언론사였다.

조 국장은 "비록 경기교육신보가 특수 주간지이기는 했지만, 경인지역의 끊어진 언론의 맥을 잇는 매체였다"며 "처음에는 경인지역의 교육을 다뤘지만, 점차 다양한 곳에서 보도를 요청해옴에 따라 종합지의 대안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987년 ‘6·29 선언’으로 인해 10년여 만에 다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고, 경기교육신보는 ‘6·29 선언’ 이듬해인 1988년 7월 20일 ‘기호신문(畿湖新聞)’이라는 제호의 일간지로 재창간된 뒤 같은해 11월 28일 ‘기호일보(畿湖日報)’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년여 동안 교육 전문 주간지의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내용들을 보도하다 보니 이미 경기교육신보 시절에도 어느 정도 종합지 형태의 기사들을 보도할 수 있었고, 이 같은 기반이 있었기에 기호일보라는 종합 일간지의 창간이 수월했던 것이라 생각된다"고 얘기했다.

 

#기호일보 30년의 산증인

종합 일간지로 재창간된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조 국장은 "마침내 언론의 자유를 보장 받은 뒤 기쁜 마음으로 기호일보 창간의 구성원으로 참여했지만 당장 각 지역을 담당할 주재 기자를 충원하는 것도, 신입 기자를 교육시키는 것도 어려웠다"며 "때문에 당시에는 기자 1명이 적게는 1∼2개 지역을, 많게는 2∼4곳까지도 담당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회사의 빠른 안정을 위해 기존의 기자들이 서로 나서서 수습기자 교육을 맡았고, 그 덕분에 신입 기자들도 보다 빠른 시간 내에 기자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며 "이처럼 직원 누구나 회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모든 일에 앞장 서면서 다른 동료들을 돕는 기호일보 만의 사풍(社風)은 창간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후 기호일보는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 위치했던 사옥을 현 미추홀구 숭의동으로 옮기고 직원의 수도 2배 가량 늘었으며, 16면 발행에서 18면 발행으로 지면이 증가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신문제작 과정도 원고지로 기사를 작성하고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을 원고지와 함께 발송차 또는 시외버스 등을 통해 인천 본사로 보내는 방식에서 팩스를 이용하는 방식을 거쳐 현재의 인터넷을 통한 송고를 통해 이뤄졌다.

그 과정 속에서 조 국장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경영진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등 후배 기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며 30년의 세월을 기호일보와 함께 했다.

그는 지역언론의 기자로서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지역을 잘 아는 기자였기에 중앙지 또는 전국지가 다룰 수 없는 우리 지역의 각종 현안을 다루며 지역 발전의 도움이 될 수 있었고, 그동안 썼던 기사들을 떠올릴 때마다 자부심도 느껴진다"며 "기자가 된지 수 십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기자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웃음을 보였다.

이어 후배기자들을 향해 "주어진 사명감을 갖고 올바른 기사로 지역 발전을 위해 선도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자답게 정도(正道)를 걷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 기호일보 전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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