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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그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아픔의 흔적 따라… 사건의 진실 파헤치다제주 4·3 바로 알기 행사 참석, 평화공원서 희생자들 넋 위로
인천경기기자협회 | 발행일시 2018.10.16

< 제주 4·3 그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

제주 4·3 그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인천경기기자협회를 비롯한 전국 시·도 10개 기자협회 대표단은 올해 제주 4·3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4월 1일부터 3일간 제주도 일원에서 열린 '제주 4·3 바로 알기' 행사에 참석했다.

제주 4·3은 지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와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무력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관광공사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4·3 70주년을 맞아 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전국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마련됐다.

방문단은 첫날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이곳은 4·3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지난 2008년 조성됐으며, 연간 20만 명의 방문객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다. 1988년부터 언론사에서 4·3 특별취재반을 구성해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30년째 4·3 진상규명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양조훈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은 특강을 통해 "저항과 수난의 역사인 제주 4·3은 향후 명확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주요 관건"이라며 "이제는 여야나 보수·진보의 잣대에서 벗어나 제주도민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객관적으로 4·3에 대해 알아야 한다. 4·3을 많이 알려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주민 대피소로 활용한 동굴 ‘동광 큰넓궤’


이튿날 기자단은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김종민 상임공동대표의 인솔 아래 제주 곳곳에 위치한 과거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이들은 과거 마을이 통째로 불에 타 '잃어버린 마을'로 불리는 '무등이왓'을 방문한 데 이어, 마을 주민들이 대피해 살았던 동굴 '동광 큰넓궤'를 찾아 비좁은 내부에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다. 또 셋알오름·섯알오름·알뜨르비행장 등 집단 학살터 현장도 잇따라 둘러보면서 과거의 비극과 아픔을 간접 체험했다. 김 대표는 "4·3은 무려 7년 7개월간 지속된 참혹하고 비극적인 역사지만, 폐허에 가까웠던 곳이 지금은 아름다운 섬으로 거듭나지 않았느냐"며 "이는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당시 어린 소년 소녀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았기에 가능했다. 비극의 역사를 주민들 스스로 극복해냈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단은 3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사흘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등 각계각층의 인사와 유족 단체를 비롯한 수 천 여명의 추모객이 운집, 피해 영령의 넋을 기렸다.

경인일보 황성규기자

 


[인터뷰]  4.3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81) 

4.3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81)


"어쩔 땐 너무나 가슴이 아파. 다 잊고 살았다 생각하는데도……."

 '제주 4·3 바로 알기' 행사 이틀째 날 '무등이왓'에서 만난 4·3 생존자 홍춘호(81) 할머니는 70년 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어느 날 마을에 불어닥친 4·3의 먹구름은 11세 소녀였던 홍씨에겐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총살을 당하고 마을은 통째로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자, 홍씨를 비롯한 7식구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굴에 숨어 살아야만 했다. 홍씨는 "한 군데 같이 숨으면 한 번에 다 죽을까봐 식구들이 여기저기 나눠 숨어지냈다. 정말 짐승만도 못한 삶이었다"며 "결국 동굴에 숨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고 살았다. 하늘이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동굴에서 나가면 죽을까봐 그러지 못했다"고 설움을 토로했다.

50일간의 참혹한 동굴 생활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지만 홍씨의 삶은 여전히 가시밭길이었다. 부모님은 수용소로 끌려가고, 홍씨는 12살의 나이에 식모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어느새 홍씨에게 씌워진 '빨갱이'라는 낙인이었다. 홍씨는 "4·3이 끝난 뒤에도 '폭도새끼'라면서 손가락질을 하는데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며 "동네 사람들이 집도 안 빌려주는 바람에 외양간 한 귀퉁이에서 밥을 지어먹고 살았다"고 털어놨다.

4.3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81)


 '4·3길 문화해설사'이기도 한 홍씨는 지난해 8월부터 '무등이왓'을 찾는 이들에게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4·3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홍씨였지만, 중간 중간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면 복받치는 설움에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매번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이 쉽진 않지만, 홍씨는 열 일을 제쳐 두고 4·3 알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홍씨는 "다 잊고 살았다 싶은데도 어쩔 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그래도 그때 일을 실제 겪었던 게 나니까, 걸음이라도 걷고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진 이 일을 계속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시금 활짝 웃었다.

경인일보 황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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