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목요일 저녁. 적막을 깨고 지령이 하나 떨어졌다. 기자협회보에 넣게 회원글밭 하나 써서 보내라~ .

막막했다. 콘셉트를 아는 탓이다. 앞서 쓴 세 명의 선배글이 그랬다.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출산기 다. 한손에는 아이를, 다른 한손에는 남편과 아내를. 그토록 오붓한. 손 둘 곳 없는 독거청년에게는 가혹한 미션이다. 그렇다고 발상의 전환을 하자니 소재가 없다. 고민 끝에 나도 출산기 를 쓴다. 최근 엄마가 된 우리 집 고양이 정남이 (7)다.

사실, 새끼를 갖기에는 늦은 나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40대 중반쯤 된다. 사람보다 6~7배 빠르다. 처음에는 볼록해진 배를 보고 과식 했거니 했다. 우린 무심했다. 잘보면 평소와 달랐다. 행동도 굼뜨고, 종일 잠만 잤다. 앙칼짐 도 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역시나였다. 모니터에 네 마리의 아기들이 보였다. 신비했다.

고양이의 출산 준비는 소박하다. 그저 밀폐된 방과 푹신한 타월 하나만 깔아주면 된다. 도움은 필요 없다. 스스로 낳는다. 배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참 신통방통하다. 그렇게 5주후.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세상 밖에 나왔다.

경기일보 문화부 박광수 기자

불행한 일이지만 아빠 (?)는 모른다. 의심 가는 녀석이 있다만, 어쩔 수 없는 일. 정남이 좋아하는 네 가지를 골라 캣닢 참치 스팸 꽁치 로 이름을 지었다. 엄마가 돼서 일까. 전보다 의젓하다. 새끼를 보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새끼들 몸에 손을 댔을 때 발톱 을 세우거나 꺄옹~ 하고 앙칼진 소리를 내면, 조용히 손을 떼는 게 상책이다. 밥 먹는데 집중하는 사이 몰래 새끼를 데려가 숨겨 놓으면 신기하게도 금세 찾는다. 아프지 않게 어금니로 목덜미를 살짝 물어 케이지로 데려간다. 뒷모습이 듬직하다.

정남 차일드(?)를 보고 있으면 새끼 때 정남이 생각난다. 녀석도 겨울에 태어났다. 지하실 구석에서 정남을 발견했다. 갓 태어난 듯 했다. 옆으로 형제들이 있었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다. 엄마는 없었다. 그 뒤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사연이 있겠지 했다.

고양이 세계에서는 코 로 미모를 겨룬다. 얼룩이 있으면 안 된다. 정남은 연분홍의 깨끗한 코를 가졌다. 킁킁 냄새를 맡을 때 미세하게 수축 팽창하는 코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엄마를 닮아선지 새끼들도 미모가 수준급이다. 간혹 아빠의 냄새를 풍기는 녀석도 있다. 그러면 의심이 더해지지만, 그래도 좋다.

고양이집도, 우리집도 작아 네 마리 모두 키울 수 없다. 누나도 나도 고민이 많았다. 결국 커뮤니티에 무료 분양 글을 올렸다. 곧 있으면 이별이다. 두 마리는 분양을 끝냈다. 한 달 후면 새 주인이 나타난다. 다산(多産)하는 고양이들 앞에 놓인 현실이다. 새끼들이 엄마의 기억을 짚어낼지 모르지만, 이 험한 세상 행복하게 살아낸다면 좋겠다. 정남도 같은 바람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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