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각루 밖 억새밭. /이용창 기록사진작가 제공

한겨울 축성의 고통 감싸는 위민정신 담아
기술자와 막일꾼들에게 털모자·솜옷 하사
건축미의 웅장함뒤에 숨은 인간사랑 봤으면

2016년은 수원화성방문의 해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 이벤트라고할 수 있다. 1997년 유네스코가 화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면서 크게 4가지 이유를 들어 화성의 세계유산적가치를 설명해 주었다.

화성은 동서양 군사건축물의 모범이며, 화성은 성곽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아름다우며, 화성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남아 있다는 것이 그 3가지 이유였다. 마지막 4번째 문화적 가치는 바로 화성에 정조의 위민정신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의 위민정신이 담겨 있어 해당 국가의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다는 이야기를 필자 자신이 세계유산 등재를 심의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MOS) 회원임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화성은 군주를 위한 성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성이었다. 축성의 목적이 백성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축성 과정에서도 백성을 위한 성이기도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겨울에 추위에 떨지 말라고털모자를 하사한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흰눈과 얼음은 어린이와 연인들을 들뜨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과거 2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면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솜옷을 입고 따스하게 살아가게 된 것은 채 몇 십 년이 되지 않
았다. 고려 말에 문익점에 의해 목화가 보급되었지만 실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솜옷은 백성들의 의복이 아니었다. 그러니 야외에서 일을 할 때 얼마나 추웠겠는가!

화성을 축성할 때도 겨울은 추웠고 축성에 참여한 기술자와 인부들이 너무도 힘들어하였을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 정조가 왜 그런 사실을 몰랐겠는가? 정조는 겨울을 이기면서 축성을 진행할 수 있는 특별한 조처를 내려주었다. 그것이 바로 기술자와 일꾼들에게 털모자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깟 털모자를 하사한 것이 뭐 그리 대수고, 정조의 특별한 민본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가라고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정조의 털모자 하사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정조가 얼마나 화성을 축성하는 백성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방화수류정. /이용창 기록사진작가 제공

조선시대에는 한 겨울에 정3품 당상관 이상만이 귀마개를 할 수 있었다.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는 정3품까지 올라간 나이 많은 관료들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유일한 물건이었다. 더불어 털로 만든 모자 역시 이들만이 쓸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선시대는 모자를 아무나 쓸 수 없었다.

신분적 차별이 극심하던 시대에 이러한 털모자까지도 아무나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유득공의 문집을 보면 조선후기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면서 서울에 있는 정3품 당상관 아래에 있는 일부 관료들이 건방지게 귀마개를 한다고 개탄을 하였지만 그래도 일반 평민들은 절대로 쓸 수 없는 것이 바로 털모자였다. 이처럼 감히 평민들은 만져보지도 못할 털모자를 겨울에 성곽을 쌓는 기술자와 인부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정조가 화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화성을 축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북각루 오른 성벽. /이용창 기록사진작가 제공

털모자만이 아니라 기술자와 막일꾼들에게 솜옷도 하사해주었다. 앞서 설명했지만 조선시대 솜옷을 입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여름에 입던 삼베옷을 겨울이 되어도 그냥 입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안에 솜옷이 가득해서 입기만 해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솜옷을 임금님이 지어서 나누어주었으니 화성 축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화성은 정조의 그런 마음과 정조의 마음을 이해한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된 것이다. 작은 털모자와 솜옷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로 인해 화성이 탄생된 것이다.

북포루 /이용창 기록사진작가 제공

오늘 우리는 무척이나 각박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에 대해 건축미의 웅장함 혹은, 아름다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인간에 대한 진실된 사랑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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